우리는 각자 자신이 누구인지에 관한 나름의 판단을 갖고 있다. 나는 수학에 약해, 나는 성격이 급해, 나는 불의를 보면 못참아, 나는 겁이 많아 등등. 이렇게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을 자아상이라고 하는데, 과연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은 고정불변인가? 나는 30여 년 이상 의식 탐구와 훈련을 해왔고, 그 결과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내가 생각하는 고정불변의 나 같은 것은 없다."
이와 관련해서 구체적인 사례 하나를 말해보자. 나는 학창 시절에 운동을 정말 못했다. 8명이 함께 달리는 운동회에서 꼴찌 했었고, 초등 시절에 모든 과목은 수였는데 체육만 필기 점수를 만점 받아서 메꿨는데도 우였다. 게다가 입대하여 논산 훈련소에서 수류탄 던지기를 했는데, 나만 바로 앞에 톡 떨어뜨려서 교관에게 쌍욕과 벌점을 받았다. 또 논산 훈련소에서 총검술과 제식 훈련을 하는데, 조교가 나만 따로 시켜보다가 결국 포기해버렸다. 그의 얼굴에 서린 그 묘한 좌절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무슨 저런 인간이 있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당연히 이런 누적된 경험을 통해서 나는 체육과 운동에 관해서 뉴톤의 만유인력처럼 믿는 게 있었다. '나는 운동에 젬병이고 운동이 싫다.' 이런 결코 깨지지 못할 굳은 믿음을 갖고 카투사로서 자대에 배치되었는데, 마침 미군은 모든 장병에게 필수로 요구하는 체력 요건이 있었다. 2분 윗몸일으키기(sit-ups), 2분 팔굽혀펴기(push-ups), 2마일(=3.219km) 달리기의 세 종목에 최소 기준을 정해서 이 기준을 무조건 통과해야 했다.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주 엄청난 갈굼을 당해야 했고, 게다가 남자들만 가득한 곳에서 체격과 체력이 뒤쳐지는 것은 참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의 특유의 자존심이 발동했다. '이대로 존심 상할 수는 없으니,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 나는 이때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운동에 대해서 못한다는 생각 대신에 해보자는 생각을 해보았다. 도저히 내가 운동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죽어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날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1시간 동안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와 2마일 달리기를 했다. 처음 달리기를 하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나니 숨이 차서 심장이 튀어나갈 것 같고, 하늘이 노랗게 보여서 순간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그만 둘까했다. 그러다 '체력 시험 떨어져서 쪽팔려 죽을 바에야 숨 차서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고, 잠시 뒤에 모든 고통은 사라졌다.
그렇게 몇 달 동안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운동을 했는데, 마침 독립 기념일 기념 단축 마라톤 대회가 영내에 열렸다. 어차피 날마다 뛰어왔으니 참가에 의미를 두고서 나도 참가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10키로 미터를 달리는데 모든 사람이 나보다 뒤쳐지더니 내 앞에 단 두 명만 있는 채로 내가 완주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포상 휴가와 상품을 타기도 했다. 몇 달 뒤에 다시 달리기 대회에 참가했는데, 이번에는 2등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내 인생에서 최고의 교훈을 얻었다. 나는 '운동에는 젬병이야'라는 판단(신념)을 '운동을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로 바꾸니 이런 엄청난 결과가 나오는구나. 내가 여기서 얻은 교훈을 정리해 보자.
첫째, 내가 생각하는 고정불변의 나 같은 것은 없다. 나는 언제나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둘째, 나에 대한 판단(자아상)이 바뀌는 만큼 내 인생이 바뀐다.
우리는 흔히 '사람은 안 바뀐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안 바뀌면 못 살아요. 바뀌어야 살아요. 핸드폰 컴퓨터는 몇 년 마다 사고 일 년에 몇 번씩 업데이하면서 왜 사람만 안 바뀌고 살 수 있어요.'
"사람은 안 바뀌는 것이 아니라 바뀌어야 산다. 이런 바뀜을 학습 또는 발전이라고 한다."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해서 어떤 부정적인 판단을 갖고 있는가?
수용확언)
- 비록 나는 운동은 절대로 잘 할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약한 몸으로 무시당하고 고생하면서 살아왔지만 깊이 완전히 나를 받아들입니다.
- 비록 나는 절대로 영어는 잘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영어 포기자로 살다보니 외국인만 만나면 얼어붙지만 깊이 완전히 나를 받아들입니다.
- 비록 나는 절대로 분노 조절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싸움닭으로 살다가 늘 시비에 휘말리고 심지어 맞아죽을 뻔했으면서도 사람은 안 바뀐다고 믿고 앞으로도 이꼴로 살 생각하니 절망적이지만 깊이 완전히 나를 받아들입니다.
통찰)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을 세 문장으로 요약한 삼법인(三法印)이란 것이 있다. 이 중의 하나로 '제법무아(諸法無我)'가 있는데, '모든 것에(諸法) 고정불변의 나(我)라는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고정불변의 나가 없다는 주제를 가장 잘 설명한 것이 바로 <금강경>이다.
"나는 나인 나다(I am that I am)." - 성경 출애굽기 3장 14절
이 구절은 모세가 하느님을 처음 만나서 놀라서 물었을 때, 하느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다. 나는 이것이 나의 본질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구절이라고 본다. 나의 본질은 마음이며, 이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의 일부이며 동질하다. 따라서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 내가 있으므로 세상이 존재한다. 나는 이 세상의 전지적 화자다.
- 내가 세상을 판단하나 세상은 나를 판단할 수 없다. 나는 항상 판단 너머에 존재한다.
- 내 생각이 세상을 만든다. 내 마음속에서 믿는 대로 세상을 창조하고 경험하게 된다.
확언)
- 사람은 안 바뀌는 게 아니라 바뀌는 사람과 안 바뀌는 사람이 있다.
- 사람은 안 바뀌는 게 아니라 바뀌어야 산다. 안 바뀐 사람은 다 도태되고 병들고 일찍 죽었다.
- 나는 나인 나다. 나는 판단하는 자이지 판단되는 자가 아니다.
- 나의 판단이 내 몸과 내 인생과 내 세상을 창조한다.
- 내가 믿는 대로 경험하게 된다.
- 나는 무한한 창조력을 가진 마음이다. 나는 나인 나다.
- 하느님은 마음이며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나는 마음이며 내 판단으로 내 세상을 창조한다.
- 내가 생각하는 그런 고정불변의 나는 없으나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
- 할 수 없는 것도 맞고 할 수 있는 것도 맞다. 결국 네 생각대로 되니까.
- 판단을 내려놓고,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느님께 모두 내맡기고, 그저 존재한다. Let go, be open, trust, just be.
- 현존은 가장 큰 지혜이며 가장 큰 힘이다. 무판단의 현존은 모두 치유하고 모두 해결한다. 나는 현존한다.
- 내가 사라지면 삶이 살아진다.
- 나는 판단을 내려놓고 내면의 안내를 받는다. 내면의 안내로 모든 난관을 돌파한다.
- 상황에 휘둘리지 않으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 나의 에고는 무엇이 진정 좋은지 나쁜지 모른다. 오직 모를 뿐!!!!
- Let go, let God. 판단을 버리고 하느님께 맡긴다.
- Not by me, throgh me. 내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신다.
- All is well. 다 좋다. 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