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많이 쓴다. '귀천(貴賤)이 없다'는 말은 직업이나 신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모든 직업이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않다. 상담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이 험한 일을 하셔서 친구들에게 부모님 직업을 말하는 것이 부끄러웠다는 말을 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가정 환경 조사서'라는 것이 있고, 여기에 온갖 사생활 정보를 적게 했다. 거기에는 부모님의 학력과 직업을 적는 난도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거기에 '어머님의 학력 초졸, 아버지의 학력 중졸, 아버지의 직업 노동'이라고 쓰는 게 망설여져서, '아버지가 노동하는 게 뭐가 부끄러운 일이냐.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인데.'라고 혼잣말하면서 채워넣었던 게 기억난다.
지금은 한류가 득세해서 한국인인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사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할리우드 영화가 득세했고, 백인은 늘 귀하고 황인종이나 흑인은 늘 천하게 보였다. 또 인도에 가면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리는 신분이 있어서 이 사람들은 아예 천한 일만 하고, 말 그대로 일반인은 손대는 것 마저 꺼려한다.
이렇게 우리의 에고는 늘 직업이나 신분이나 인종 등의 다양한 작위적인 기준에 따라서 나와 남의 귀천을 나누고 따지려고 한다.
혹시 학력이나 직업이나 인종 등의 다양한 이유로 나와 남의 귀천을 판단한 적이 없었나?
수용확언)
- 비록 나는 그 외국인이 검은 피부의 동남아 사람이라고 무시하고 천하게 여겼지만 깊이 완전히 나를 받아들입니다.
- 비록 나는 그 사람이 허드렛 잡일이나 하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대했지만 깊이 완전히 나를 받아들입니다.
- 비록 내가 그때 허드렛 잡일 알바를 한다고 주인이 나를 무시하고 깔봐서 너무 슬프고 서러웠지만 깊이 완전히 나를 받아들입니다.
- 비록 나는 내가 전문직이라고 별 볼 일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무시하고 내가 그들보다 귀하다고 느꼈지만 깊이 완전히 나를 받아들입니다.
통찰)
성경에는 판단에 관한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판단하지 않으면 판단받지 않으리라. 세상을 용서하라. 그러면 세상이 너를 용서하리라." 판단은 양날의 칼이다. 나의 판단이 지금은 남을 찌르지만 곧 나를 찌른다. 평화는 칼을 완전히 내려놓을 때 온다.
확언)
- 나는 그냥 나다. 나는 그냥 나다워도 된다. 나는 나다움을 인정하고 좋아한다.
- 세상에는 나같은 사람도 필요하다. 모든 꽃이 장미라면 장미가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평범하고 별볼일 없지만 이런 나도 그냥 좋다. 내가 재벌이나 영웅이나 천재는 아니지만 꼭 그럴 필요도 없고, 다음 생에는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생에는 나는 그냥 나로서 기쁘게 산다.
- 판단하지 않으면 판단받지 않는다. 세상을 용서하면 세상이 나를 용서한다. 나는 판단을 버리고 용서한다.
- 나도 남도 하느님의 성스러운 자식이다. 나도 남도 하느님이 창조하신 그대로다.
- 내가 무엇을 하건 얼마를 벌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하면서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먹고 사는데, 뭐가 문제냐? 빌어먹는 것도 아니고 훔치는 것도 아닌데. 내 능력껏 내 힘닿는 만큼 벌어서 먹고 사는데 그냥 당당해도 된다. 귀한 사람들이 나에게 보태준 것도 없잖아!
- 판단을 내려놓고,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느님께 모두 내맡기고, 그저 존재한다. Let go, be open, trust, just be.
- 현존은 가장 큰 지혜이며 가장 큰 힘이다. 무판단의 현존은 모두 치유하고 모두 해결한다. 나는 현존한다.
- 내가 사라지면 삶이 살아진다.
- 나는 판단을 내려놓고 내면의 안내를 받는다. 내면의 안내로 모든 난관을 돌파한다.
- 상황에 휘둘리지 않으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 나의 에고는 무엇이 진정 좋은지 나쁜지 모른다. 오직 모를 뿐!!!!
- Let go, let God. 판단을 버리고 하느님께 맡긴다.
- Not by me, throgh me. 내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