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양희은(1952- )은 30세이던 1982년 난소암 말기(점액성 난소암) 판정을 받고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종양이 9개월 아기 크기(nine month size)만큼 자라 복수가 차고 다른 장기를 밀어 올리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가족들의 극진한 간호와 무염식·유기농 위주의 집밥, 그리고 본인의 강한 의지로 수술만 받고 항암 치료도 받지 않았지만 완치되어서 기적의 사례로 꼽힌다. 투병 중 유서처럼 그녀가 가사를 쓴 곡이 그녀의 대표곡인 '하얀 목련'이다.
그런데 그녀는 왜 이런 젊은 나이에 이런 말기 난소암에 걸렸을까? <치유의 혁명, 심신의학 EFT> 547쪽에 난소암의 심리적 원인이 나온다.
● 사랑하는 사람(또는 반려동물)을 잃은 상실감 또는 그 충격.
사랑하는 가족이 죽거나 정든 반려동물이 죽거나 파트너에게서 버려지거나 이혼을 겪거나 아이가 집에
서 멀리 떠나는 것 등이다.
●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봐 두렵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반려동물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잃는 것과 비슷한 상실감이나 충격을 줄 수
있다.
● 가까운 사람에게 느끼는 배신감.
파트너나 친구나 가족과 극심한 갈등이 생기거나 그들에게 배신당했다. 이런 갈등과 배신감은 결국 그
들을 잃은 것과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결국 요약하면 아주 가까운 사람을 잃은 충격이나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한 충격이 난소암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녀는 도대체 무슨 일로 이런 충격을 받았던 것일까?
검색해보니 그녀는 1952년 8월 13일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에서 태어났으며, 상당히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다. 육군대령이던 아버지는 그녀가 아주 어릴 때 어머니와 자주 다투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또 다투다 친정에 간 사이 새 여자를 집으로 바로 데려와 그녀에게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양희은이 불과 12살(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1964년 세상을 떠나서 제대로 미워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고생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어머니가 양장점을 운영하며 집안을 이끌었으나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어머니의 양장점마저 화재로 잃게 된다. 당대 최고 명문인 경기여중고를 다녔지만 본인이 밝히길 중고등학생 때는 학교에도 잘 가지 않고 그리움과 원망이 뒤섞인 마음으로 아버지의 산소에 가 수 시간씩 앉아있다 돌아오곤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10대부터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노래를 했다고 한다.
결국 그녀의 충격의 원인은 가족을 버리고 배신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었다. 이 충격이 누적되어 있다가 그녀가 30살 무렵에 어떤 사건을 계기로 또 터져나오면서 난소암이 된 것 같다. 구체적으로 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주어진 정보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자 그럼 난소암을 치유하는 즉석 EFT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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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나는 -----를 잃은 슬픔과 공허함이 너무 크고 가슴에 가득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깊이 완전히 나를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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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나는 -----가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고 그 충격이 온 몸에 남아있지만 깊이 완전히 나를 사랑하고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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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나는 ----를 잃은 상실감이 너무 커서 가슴에 큰 구멍이 난 것 같고, 내 몸이 텅 빈 껍데기처럼 느껴지지만 깊이 완전히 나를 이해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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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나는 가장 믿고 의지했던 ----가 나를 배신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마구 마구 치밀어오르지만 깊이 완전히 나를 사랑하고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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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나는 ----가 도대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지만 깊이 완전히 나를 사랑하고 받아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