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EFT 3주차 수업을 들으러 다녀왔다.
원장님은 매 수업마다 직접 세션을 보여주시는데, 보통은 첫 수강하시는 분들께 세션 기회가 돌아간다. 재재재재재수강이라 당연히 못 받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아무도 손을 안 드셔서 냉큼 손 들어 원장님께 세션을 받았다.
사실 EFT를 하다 보면 깊은 심연에 있는 무의식의 상처들이 떠오르는 거라, 어떤 게 떠오를지 본인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아마 남들 앞에서 어떤 게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자신의 상처를 오픈하는 게 두려워서 아무도 손을 안 드셨던 것 같은데, 혼자 작업하려면 너무 힘드니 이건 정말 기회다 싶었다.
딱히 주제가 없이 EFT를 했는데도 까도 까도 양파처럼 계속 나온다. EFT가 뭔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요약해서 대화체로 써본다.
원장님: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내 몸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스캔해보세요. 그리고 다른 느낌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면 멈추고 얘기해주세요.
나: 자궁 쪽에 엄청 커다랗고 까만 느낌으로 까끌까끌한 무언가가 느껴져요.
원장님: 거기에 그냥 가만히 초점을 두고 집중해보세요. 그 부분이 만약에 감정을 느낀다면 어떤 감정이 느껴질까요?
나: 슬퍼하는 것 같아요.
원장님: 혹시 슬퍼하는 느낌이 얼마나 된 것 같아요?
나: 오래된 것 같아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5살이 떠올랐어요.
원장님: 그냥 가만히 느껴보세요.
나: 5살. 할머니네 집 옥상이에요. 명절이라 친척 오빠들이랑 있어요. 제가 옥상에서 쉬야를 하고 있는데 친척 오빠 중 한 명이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남자애들한테 그걸 구경시켜줬어요. 제가 뭔가 잘못됐다는 게 느껴져서 아빠한테 가서 이를 거야 하니까 오빠가 저를 가로막아요.
원장님: 본인이 지금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데, 어떤 기분이나 감정이 느껴져요?
나: 이상하고 잘못됐다는 느낌, 오줌 싸는 걸 구경하니까 창피해요. 슬퍼요. (눈물 콸콸 흘림) 나만 여자인 게 부끄러워요. 쟤네가 내 소중이를 구경하는 게 수치스러워요.
원장님: (EFT 두드림) 또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느껴져요?
나: 이제 창피하고, 수치스럽고, 슬프지는 않아요. 근데 친척 오빠도 자기가 잘못하는 걸 알면서 저런 짓을 한 게 화가 나요.
원장님: (EFT 두드림)
나: 이제 여자라서 부끄럽지 않아요. 창피하지도 않아요. 바지 입은 장면으로 바뀌었어요. 그 장면이 안 떠올라요. 근데 제가 쉬야가 먼저 마렵다고 한 게 아니었어요. 친척 오빠 중 한 명이 자꾸 쉬야가 안 마렵냐고 계속 물어보면서, 거기가 쉬야를 할 만한 장소가 아닌데 그쪽으로 유인했어요. 그러면서 계속 쉬야 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동네 남자애들을 그 앞에 다 모아놨고, 미리 계획해놓은 거였어요.
원장님: 그래서 지금 기분이 어때요?
나: 너무 화나요.
원장님: 앞에 있는 그 오빠 보세요.
나: 본인이 잘못한 걸 알고 있어요. 아빠한테 가서 이른다니까 못 내려가게 저를 막아요. '야 이 개새끼야! 나쁜 놈아! 개만도 못한 놈아!'
원장님: (EFT 두드림)
나: 본인도 잘못된 짓인 줄 알면서도 계획했다는 게 화가 나요.
원장님: (EFT 두드림)
나: 장면이 바뀌었는데, 아빠한테 이른다고 하니까 오빠가 무릎 꿇고 빌고 있는 장면으로 바뀌었어요.
원장님: 앞에 있는 오빠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전부 다 하세요.
나: '이 개새끼야! 니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나쁜 새끼, 잘못된 걸 알면서도 계획해서 한 게 너무 괘씸하고 너무 화가 나요. 용서를 못 할 것 같아요. 복수하고 싶어요.'
원장님: (EFT 두드림, 게슈탈트 치료)
오빠: 동생이 어려서 모를 줄 알았어요. 그냥 호기심이랑 장난이었어요. '넌 어리고 해서 그런 걸 못 느낄 줄 알았어. 동네 애들이 궁금해하길래, 내가 보여줄게 그랬던 건데 너한테 그게 평생 큰 상처가 될 줄 몰랐어. 실수였어. 진심으로 미안해. 진심으로 사과할게.'
나: '계획적으로 애들 불러 모아서 일부러 그 시간, 그 장소에 나를 데려간 거잖아. 그건 실수가 아니야. 그리고 잘못된 행동이란 걸 아니까 내가 아빠한테 못 가게 막고, 아빠한테 제발 말하지 말아달라고 비는 거잖아. 아빠가 무서워서 사과하는 거지, 진짜 나한테 미안한 게 아니잖아!'
원장님: (EFT 두드림)
오빠: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그 정도까지 상처받을 줄은 몰랐어요. '너무 미안해. 정말 정말 잘못했어. 미안해.'
나: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 같아요. 조금 마음에 걸리는 건 있는데 그래도 사과 받아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원장님: 조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어떤 걸까요? 억지로 사과 받아줄 필요 없어요.
나: 이건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요...
원장님: 지금 이 사건은요, 사실 본인의 마음속에만 남아있는 5살 때의 기억이에요. 지금은 이미 어른이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도 없어요. 이건 사실 내 마음속에만 남아있는 장면이고 기억인 거예요. 이걸 계속 상영하면서 살지, 과거의 기억을 놓아줄지도 본인이 선택하는 거예요.
나: 이제 그만 과거의 기억을 놓아주고 싶어요. 이제 오빠를 용서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원장님: 그 장면 다시 한번 돌려볼까요?
나: 바지를 입고 있는 장면으로 바뀌었어요.
원장님: (내면아이 치유)
성인 나: 괜찮아. 네가 잘못한 건 없어. 수치스러워하지 않아도 돼. 창피해하지 않아도 돼. 내가 항상 함께할게.
나: 쉬야하는 장면에서 제가 가로막고 다른 애들이 못 보게 하고 있는 장면으로 바뀌었어요. 남자애들이 아쉬워서 가요.
원장님: 다시 한번 자궁 쪽의 까맸던 부분 마음의 눈으로 느껴보세요. 어떻게 느껴지나요?
나: 그냥 원래의 자궁 모양이에요.
이 기억을 정말 무의식이 다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성인이 되고는 한 번도 의식 위로 떠오른 적 없던 기억이었는데, 할머니 집 옥상의 구조, 바닥의 색깔, 건너편 아파트 벽에 있던 낙서, 남자애들이 들고 있던 장난감까지 하나하나 다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성인이 되고 저 친척 오빠를 볼 때마다 때려주고 싶다는 느낌이 자주 들곤 했었는데, 그 이유가 이거였구나.
세션 후에는 오랜만에 때를 민 것처럼 온몸이 상쾌하고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장기를 다 꺼내서 깨끗하게 세척한 것 같은 느낌. 세션 받는 내내 눈물 콸콸이었지만, 그만큼 속이 시원했다.
평소 생리통이 굉장히 심해서 타이레놀을 4알씩 먹는데, 이날도 생리통으로 약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세션 후에 정말 신기하게도 생리통이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 원장님은 우리 몸과 마음은 모두 연결되어 있어서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하셨다.
몸은 마음이 잊은 것도 대신 기억하고 있다는 걸 이번에 경험으로 다시 느꼈다. 30년 가까이 의식 위로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던 기억이 몸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있었고, 이유 없이 싫었던 그 감정, 이유 없이 아팠던 통증도 사실은 다 이유가 있었다.
정말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상처들, 기억들은 무의식 속에 아주 많이 숨어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하나씩 들여다보고 나면, 그만큼 더 가볍고 더 자유로워진다. 힘들어도 계속해서 나를 들여다보는 이유는, 아마 이것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아픈 기억은 덮어두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들여다보지 않은 상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무의식 속에 남아 계속 나의 일부로 존재한다. 반대로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이해하고, 품어줄 때 그 기억은 더 이상 나를 붙잡는 힘을 잃는다.
나는 상처를 없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혼자 남겨졌던 나를 다시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나 자신과 가까워진다.
이 글을 이렇게 자세하게 남기는 이유는 하나다. 혹시 비슷한 기억이나 감정을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의 일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당신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우리는 때때로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나를 탓하며 살아가기도 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했던 어린아이였을 뿐이다.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게,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의 상처를 오픈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