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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엄마 뱃속 트라우마가 한 사람의 평생 심리적 및 육체적 건강에 얼마나 치명적 영향을 주는지 또 그 사람의 인생 자체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주는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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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뱃속 트라우마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태아가 겪는 트라우마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의식은 기억하지 못해도 무의식은 그때의 기억을 온몸에 감정의 형태로 저장합니다. 뱃속 트라우마는 똑같은 충격을 받는다 하더라도 성인기에 받는 충격과 비교했을 때 그 열 배, 백배는 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똑같은 두려움이라도 성인이 겪는 것과 청소년이 겪는 것과 아동이 겪는 것과 유아가 겪는 것과 뱃속의 태아가 겪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합니다. “나도 모르겠어요. 도저히 어쩔 수가 없어요. 태어날 때부터 이랬던 것 같아요” 이처럼 바꾸고 싶지만 철옹성같이 굳어져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내 안의 문제점들은 거의 가 기억할 수 없는 태아나 유아, 혹은 이 둘을 합한, 태아 때부터 유아로 죽 이어지면서 받은 상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50대 중반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요통을 비롯한 관절통, 고혈압과 당뇨 그리고 온몸의 경직에서 오는 섬유 근육통으로 오랫동안 병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증상은 조금도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점점 더 심해질 뿐이었습니다. 급기야 그녀는 몸과 마음의 고통으로 인해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어떻게 해보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못하고 그저 죽기만을 바라며 삶을 내팽개쳐버렸습니다. 하지만 평소 그녀를 가까이에서 도와주었던 언니의 간절한 권고로 마지못해 심리 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육체적 증상인데 왜 병원이 아닌 심리 상담을 받는지 의아해하리라 생각됩니다. 사연인즉 이러합니다. 

 

그녀의 섬유 근육통을 비롯한 각종 질환은 이미 십 년 가까이나 지속되었고 이 증상으로 인해 불면증과 우울증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언제부터인지 그 시작도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은 평생을 따라다녔고 3년 전부터는 극심한 편두통마저 생겨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고통을 잊기 위해 10알 이상의 진통제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더해 거의 한 주먹만큼의 약을 매일 복용해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마음의 불안과 두려움, 무기력과 우울증, 그로 인한 불면증 때문에 매일 소주 한 병과 강장제인 박카스를 한 박스 마셔야만 그나마 약간의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10년 가까이 병원을 다녔으나 전혀 차도는 보이지 않았고 정신 또한 황폐해져버려 지켜보던 그녀의 언니가 우선 마음이라도 다 잡을 수 있게 심리 상담을 권했던 것입니다. 언니의 간곡한 부탁과 성의를 차마 거절하지 못해 심리치료를 받긴 했지만 그녀는 어떤 희망도 보여주지 않았고 그저 무기력으로만 반응했습니다. 심리치료사가 언니를 통해 대신 전해 들은 그녀의 지나온 삶은 이러했습니다.

 

그녀는 1남 7녀 중에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요즘 말로 하면 한량 그 자체였습니다. 수입은 없고 주색잡기에만 빠져 아내와 자식들은 뒷전이었습니다. 게다가 툭하면 술 마시고 들어와 돈을 내놓으라고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으며 자식들이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는지, 굶고 있는지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는 홀로 자식들을 키우며 매일매일 희망도 없는 고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여덟 번째 자식인 그녀를 덜컥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일곱 명의 자식들조차 굶기고 있는 상황에 또 한 번의 임신은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너무나 불안하고 무서웠습니다. 왜냐하면 애를 낳고 일을 못하면 이미 있는 일곱 명의 아이들의 때 거리조차 책임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낳아서 키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유산을 하기로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옛날 우리의 어머니들이 흔히 그랬던 것처럼 간장을 사발로 마시기도 하고, 논두렁에서 굴러떨어져 나뒹굴기도 하고, 질식시키기 위해 무명천으로 배를 매어 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떡하든 세상에 태어나야만 하는 그녀의 운명은 어머니의 이런 모든 노력을 다 실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사일생으로 태어나긴 했지만 낙심한 어머니는 그런 아기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떻게든 일을 해야 했으므로 젖 물릴 시간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젖 한번 배불리 먹어 보지 못하고 언니들의 등에 업혀 동네를 돌아다니며 젖 동양으로 양육되었습니다. 그러다 그녀가 여섯 살이 될 무렵 어느 해 겨울, 아버지는 술에 취해 논두렁에 쓰러져 자다가 동사했고 이듬해 어머니마저 알 수 없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오빠와 언니들은 모두 각자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고 그녀만 홀로 다른 마을에 살고 있는 사촌 고모에게 입양되어 따로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그녀의 불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말이 고모이지 그녀는 그 집에서 하녀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학교는 보내 주었지만 학교 가는 시간 외에는 하루 종일 일만 시켰고 툭하면 사촌 언니 오빠들에게 두들겨 맞았으며 고모 또한 학대를 일삼았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를 마치고 그녀는 고모 집에서 도망 나와 도시로 와서 야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착실하게 미래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녀의 가슴에는 늘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떠날 날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왜 이렇게 두렵고 불안하고 무서울까? 이제는 독립하여 맞을 일도 없고 학대받을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편치 못할까?’ 그녀는 ‘세월이 지나면 좋아지겠지’하고 애써 그 괴로운 마음을 외면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십 대 중반이 된 그녀는 한 남자를 알게 되었고 그 남자는 그녀를 따뜻하게 품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녀는 앞으로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결혼 후, 얼마의 세월이 흘러 남편이 하는 사업이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남편은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옛날 그녀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술만 마시면 폭언하고 폭행을 일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어떻게든 남편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참고 또 참았지만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할 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러다 맞아 죽겠다’ 하는 두려움이 극에 이른 어느 날, 그녀는 남편을 피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쳐 그곳에서 남아있던 얼마의 돈으로 작은 가게를 얻어 식당을 시작했습니다.

모든 상처를 잊고 열심히 살자고 다짐하며 그렇게 보내던 중 단골손님으로 늘 오던 인상 좋은 어떤 남자와 인연이 되어 다시 새로운 살림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그 남자는 철골 공사만 전문적으로 하는 작은 규모의 사업체를 가진 건축업자였는데 그 또한 이혼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새롭게 서로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며 살아가자고 약속했습니다. 처음 몇 년간은 남편이 하는 사업도 그런대로 잘 유지되었고 식당 또한 그럭저럭 잘 운영되었습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은 또 시작되었습니다. 사업이 조금씩 번창해나가자 남편은 그녀 몰래 슬슬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보란 듯이 다른 여자와 살림까지 차리게 되었고 그가 번 돈은 모두 그 여자가 가로채 가버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사업 또한 이러저러한 이유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자는 남편의 돈만 챙겨 달아나버렸습니다. 이에 남자는 울분을 참지 못해 매일 같이 술을 마시며 그 화풀이를 아무 죄 없는 그녀에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또다시 폭언과 폭행에 시달려야 했고 눈물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린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식당을 정리하고 남아 있던 얼마의 돈으로 그 남자를 멀리 떠나 새로운 곳에서 작은 전셋집을 얻고 인근에 있는 그릇 만드는 공장에 취업을 했습니다. 이즘에 그녀의 불안과 두려움은 더욱 심해졌고, 잠을 설치는 밤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운명적으로 세 번째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남자는 같은 회사의 남자로 주위에서 무던히도 착하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술과 담배는 물론 커피조차도 잘 마시지 않는 순한 남자였습니다. 이 착한 남자는 그녀에게 자기의 마음을 고백했고 그녀 또한 지금까지의 남자와는 다른 그런 착한 성품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래서 남자의 고백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서로를 위로해 주며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또다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착한 남자는 원래 폭력 전과와 사기 전과가 몇 번이나 있는 사람이었고 결혼 따위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으며 어떻게 하든 착하게 보여 환심을 산 뒤, 돈이나 뜯어내려고 의도적으로 그렇게 접근했던 사기꾼이었습니다. 얼마 후, 그 남자는 본색을 드러내며 그녀에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돈을 요구했습니다. 그제서야 남자의 정체를 알게 된 그녀는 세상이 다 무너져 내리는 듯한 절망감에 또 한 번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받는 월급의 전부는 그 남자의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셋돈까지 빼서 달라고 협박했으며 그녀가 거부하자 또 폭언과 폭행을 일삼으며 협박했습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나올 눈물조차 없었습니다. 

 

그녀의 섬유근육통은 두 번째 남자와 헤어진 후 시작되었지만 세 번째 남자와 헤어질 무렵부터는 거기에다 요통과 관절통, 두통까지 더하게 되었고 당뇨까지 심해져 급기야는 마음에 우울증까지 생겨버렸습니다. 그녀는 하늘을 원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죽는 것도 뜻대로 되지 않자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깊은 산사로 들어가 공양주로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불교에 신심이 있었던 분이라 그런지 산사에서의 적응은 아주 빨랐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이나 스님들로부터 아주 신심이 깊고 착실한 분이라 칭송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미 몸과 마음의 고통으로 인해 약해질 대로 약해진 그녀는 공양주 생활마저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존재 전체가 피폐해져버렸습니다. 절에 있는 동안 짬짬이 시간을 내어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옛날과 마찬가지로 조금도 호전이 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생긴 무기력과 우울증, 더하여 두려움과 공포, 불면증은 사람을 숨쉬기조차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그나마 숨 쉬게 해주는 최소한의 에너지는 매일매일 마시는 소주 한 병과 박카스 한 박스, 한 움큼의 약이 전부였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상담사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을 해주었습니다. “참으로 은숙(가명) 님은 저같은 사람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고통과 인내의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지금 다소나마 몸과 마음에 문제가 좀 있긴 하지만 은숙 님이 지금까지 잘 헤쳐 나왔듯이 잘 이겨내시라 믿습니다. 제가 함께 하겠습니다.” 상담사는 치유의 우선순위를 정해야만 했습니다.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다 다룰 수는 없었으므로 우선 그녀가 가진 고질적인 불안과 공포부터 다루어보기로 했습니다. 

태아가 느끼는 감정은 능동적 형태를 띠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어머니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공유하는 수동적 형태를 취합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불안해하면 원인도 이유도 모르면서 같이 불안해하고 화를 내면 또 그렇게 같이 화가 나는 게 태아입니다. 그러므로 그녀가 느끼는 만성적인 불안과 공포는 그녀가 만났던 폭력적인 남자들에게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태중에 있을 때, 어머니가 느꼈던 불안, 즉 그녀를 낳게 되면 다른 자식들을 굶겨 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 매일 같이 폭력을 일삼는 남편에 대한 공포가 여과되지 않고 그녀에게 흡수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어머니가 그녀를 낙태하기 위해 시도했던 수많는 행위들은 그야말로 지옥의 공포보다 더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느꼈던 불안은 그대로 그녀로 하여금 불안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게 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고 더 나아가 엄마가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불쏘시개 위에 기름을 부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극심한 불안장애를 갖고 태어날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녀의 이러한 심리상태가 세 남자와의 결혼생활 후에 생긴 것이라면 그 세 남자가 원인이었겠지만 그녀는 이미 어렸을 때부터 원인도 알지 못한 채 계속 불안해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의 불안장애의 근본 원인은 태중의 경험들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한 고모와 사촌 형제들, 그리고 세 남자는 다만 그것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상담사는 에너지 치료기법의 하나인 EFT(Emotional Freedom Technique, 감정 자유 기법)를 사용하여 그녀의 태아적 상처에 접근했습니다. 충분히 이완 시킨 후 눈을 감기고 태아적 모습을 상상해보게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고 급기야 목소리까지 아기처럼 변하며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뒹굴기까지 했습니다. 놀란 상담사는 치료를 멈추고 본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게 했습니다. 예상대로 그녀의 태아적 트라우마는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흔히 사람이 나 아닌 다른 존재의 목소리를 내거나 그 존재인 것처럼 행동하면 빙의되었다고 합니다. 빙의라는 것은 다른 존재가 내 몸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내 무의식 안에 해결되지 않고,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기억들이 인격화하여 드러난 것일 뿐입니다.

 

할 수 없이 상담사는 뱃속 트라우마는 그대로 두고 우선 살아오면서 겪은 크고 작은 불안과 두려움의 경험부터 하나하나 드러내어 치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상담은 거의 공포와 눈물과 전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상담을 시작한 이래 두 달쯤이 지나자 그녀는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으며 초기에는 언니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끌려간 상담실을 이즈음부터는 혼자 스스로 찾아갔습니다. 고무된 상담사는 고통의 뿌리인 그녀의 태아적 상처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잡초의 뿌리는 그대로 두고 잎만 잘라내 봤자 잡초는 죽지 않을뿐더러 처음에 시들해지는 듯하다가도 조건이 성숙하면 언젠가는 다시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다시 한번 뱃속의 태아적 모습을 상상하게 하고 그때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게 했습니다. 예상대로 그녀는 다시 한번 몸서리치게 떨었습니다. 하지만 처음과 같은 그런 발작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무서워요. 엄마가 날 죽이려 하고 있어요. 엄마가 원망스러워요. 엄마가 미워요.” 그녀는 또다시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었습니다. 상담사는 계속해서 그녀의 말을 되돌려 주면서 몸의 14경락의 혈자리를 두들겨 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일어나는 온갖 감정을 다 쏟아내게 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눈물로 뒤범벅이 된 그녀는 거친 숨을 몇 번 내쉬고는 상담사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좀 속이 후련하군요.” 

 

그 후, 뱃속 트라우마를 몇 번 더 다루자 그녀의 몸 상태도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유의미하게 줄어들었고 늘 우울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들도 차츰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안정되니 늘 마시던 소주와 박카스도 자연적으로 끊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병원에서 먹던 약도 조금씩 줄여나갔습니다. 그토록 괴롭히든 섬유 근육통도 반 이상이 줄어들었고 매일 밤마다 시달렸던 두통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로만 일어났습니다. 결국 그녀를 괴롭히던 통증의 근본 원인은 몸의 이상이 아니라 태아적 트라우마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들여다보지 않고 오로지 약만 가지고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십 년을 치료해도 낫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마지막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 대한 용서였습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두 가지 감정이 공존했습니다. 하나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에 대한 분노였고 하나는 그리움이었습니다. 즉 그녀는 어머니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립기도 했던 것입니다. 첫 상담 후 6개월이 지난 시쯤부터 그녀는 매일매일 용서 명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했던 용서 명상은 이러합니다.

 

♣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앞에 마주 앉아 있다고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로 인해 상처받았던 모든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렸습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죽이려고 간장을 마셨던 것, 논두렁에 굴렀던 것, 무명천으로 배를 조였던 것, 젖 한번 제대로 물려 주지 않았던 것… 태아는 두려웠습니다. 탯줄로 들어온 간장을 마시고 죽을 만큼 토했고, 논두렁에 굴렀을 때는 사지가 다 부서지는 것 같이 아팠으며 무명천으로 배를 조였을 때는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았습니다. 젖 한번 제대로 물지 못한 배고픔의 고통은 차라리 내 살이라도 뜯어먹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그때 일이 실제로 떠오른 게 아니고 상상으로 추정한 기억입니다.) 그녀는 분노와 두려움이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사지는 떨리고 가슴은 요동치고 목이 막혀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피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담담하게 마주했습니다. (이때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은 상상이 아니라 감정의 형태로 몸에 남아 있는 지금 현재에 실재하는 느낌입니다.) 그 분노가, 그 두려움이 너무 커 명상을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더 힘주어 이를 꽉 깨물고 끝까지 버텨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그렇게 요동치던 괴로운 느낌들도 어느덧 임계점을 찍고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고 스스로 판단이 되었을 때, 그녀는 이제 모든 것을 어머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어머니는 내가 미워서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면 남은 가족들이 살아갈 수 없기에 당신이 나에게 그렇게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당신은 그 엄동설한에도 손이 부르트도록 일만 하시고 당신 끼니는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면서 그저 배불리 먹이지 못한 자식들에게 늘 미안해하셨다. 당신은 우리를 위해 한평생 고생만 하셨는데 그 고생의 대가는커녕 아버지에게 학대만 당하다 돌아가셨다.’ 이런 이해가 일어나자 그녀는 다시 오열했습니다.

눈물이 흐를 만큼 흐른 후, 그녀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어머니! 비록 어머니가 내게 상처를 주고 아프게 했지만 나는 이제 당신을 용서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것을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당신을 받아들입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행복해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녀도 같이 미소로 화답해 주었습니다. ♣

 

꾸준한 용서 명상을 통해 어머니를 이해하고 용서하자 그녀의 몸은 거짓말처럼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유의미하게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던 몸의 이곳저곳의 통증이 거의 다 사라져버렸고 두통은커녕 자고 일어나면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맑고 깨끗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몸은 가벼워지고 우울증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며 가끔씩 올라오는 불안과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긴 했지만 과거와 비교해 보았을 때 그땐 그것이 고통이었다면, 지금은 작은 불편함으로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치유가 마무리될 무렵, 그녀는 상담사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과거에는 세상에 나 같은 운명이 또 있을까, 세상에 나만큼 불행한 사람이 또 있을까 하고 늘 하늘만 원망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내 영혼이 선택한 아름다운 한 편의 연극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머니에 대한 용서를 통해 나를 아프게 했던 과거의 모든 사람들(아버지, 고모, 사촌들, 세 명의 남자들)을 다 같이 용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그 사람들은 나에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이 무언지, 용서가 무언지를 가르쳐 준 고마운 은인들이었습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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