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는 사실이 아니라 환상이며 내가 굳게 믿고있는 믿음체계입니다.
사람은 그 믿음체계로 세상을 해석하며 평생 트라우마를 반복하며 삽니다. 저는 그 사슬을 끊고 다른 세상에서 살고싶다는 열망이 있습니다.
믿음체계를 직면하고, 그걸 온몸으로 느끼며 감정들이 다 빠져나가기를 버티는 경험도 몇차례 하였고, 그 결과로 얻어지는 마음과 몸의 가뿐함도 잘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엄마뱃속 트라우마 치유를 하며 감정과잉으로 졸도하기도 한다는 책의 구절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냥 올라오는 감정을 느껴주면 됩니다. 안느낄려고 하니까 힘들고 졸도하고 미치고 하는거라는걸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인원 원장님의 유튜브를 알게된 후 도서구매, 레벨1 수료와 엄마뱃속 트라우마 치유까지 연달아 달렸습니다.
레벨 1에서는 다년간 개인 상담을 받으면서 막혔던 부분을 eft로 풀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을 얻었고
엄마뱃속 트라우마 치유에서는 막힌 감정이 생겨난 원인을 알 수 있었습니다.
워크샵 다음날 유튜브에서 실시간 엄마뱃속트라우마eft하기가 있어 참여하였습니다.
워크샵때 올라온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고 집에서 이어 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주말이후 매일 거울명상과 더불어 올라오는 감정으로 eft를 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워크샵을 통해 나를 돌보지 않은 부모에 대한 원망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부분을 좀더 속시원하게 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인원 원장님과의 상담도 생각하고 있으나 경제적인 이유로 망설이고 있습니다.
워크샵 이후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합니다.
화요일즈음 자고 일어나는데 꿈이 지독하게 힘들었고 꿈에서 깨는데 괴로움이 심했습니다. 꿈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세상에 거부당하는 느낌과 그 감정에 쓰러지지 않으려고 맞서는 버거움을 느꼈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세상에 나올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일진도 좋지 않았지만 이 올라오는 것들이 모두 내가 태아때 느꼈던 것들이라 생각하고 감정을 관찰하였으며 지금 다시 느낄 수 있다는것이 치유의 시작과 끝임을 스스로 상기시키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요즘 사회적인 페르소나는 적당히 즐겁고 차분하며 세상과 한발 떨어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의 선후관계가 잘 읽혀 편안합니다. 하는 일도 스무스하게 진행이 됩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시간에서는 괴로움과 답답함이 있습니다. 트라우마였던 감정은 올라왔는데 직면하질 않으니 똥을 누다 만 느낌으로 뒤가 묵직합니다.
엄마뱃속 트라우마 치유에 푹 빠지고 싶어 이번주말을 통으로 비워놨습니다. 문제를 직면하면 그걸 뚫는데 힘이 들지만 그 너머에 쾌청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돌파하려고 합니다.
다른 후기들처럼 세상이 달라지고 이렇게 좋아졌다는 긍정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엄마뱃속 트라우마 워크숍을 추천합니다.
특히, 지금 살고있는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고 돌파구를 찾고 싶다면 엄마뱃속 트라우마 워크샵은 황금열쇠 입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의 뿌리가 엄마뱃속 트라우마였습니다.
가지치기만 하다가 허송세월 보내고 싶지 않으시다면 엄마뱃속 트라우마 치유 워크샵을 추천합니다.
가성비좋게 문제해결하고싶으시다면, 적은 노력으로 삶을 바꾸고 싶으시다면 엄마뱃속 트라우마 치유 워크샵을 추천합니다.
문제 직면하는게 싫고 그냥저냥 살만하다, 빙빙 돌아서 최대한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겠다, 지금 힘들긴 하지만 버틸만하니 그나마 가진 남은것도 다 잃고 바닥까지 치고 울고불고 해야 나는 정신차릴거다 아직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시면 들을필요 없습니다. 워크샵비로 맛있는거 사드시고 배땅땅 두들기면서 앞으로 올 괴로움에 웃으시면 됩니다. 그게 내가 원하는 거니까요.
선택은 언제나 본인 몫이고, 그 결과는 피할수도 없이 고스란히 내가 받는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냥 다 받으면 됩니다.
지치고 내가 너무 작아질때 마음속으로 외치는
최인원 원장님께서 소개해주신 문장으로 글을 마칩니다.
내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 가치는 하느님이 정하신다
나는 하나님의 성스러운 창조물이다
내가 어떤일을 겪었든 그 사건이 내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의 성스러운 창조물이며 그래서 절대 평화와 행복과 기쁨을 누릴 가치가 있다.
하느님이 보장하신다.
내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