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스포츠 멘탈 코칭 EFT>의 저자 김병준 코치가 이 책에 쓴 EFT 경험담입니다. 한 편의 소설 같고 영화로 만들어도 될 만큼 극적인 얘기들로 가득하니 찬찬히 읽어보세요. 글이 길어 나누어서 올립니다. 인생의 벼랑 끝에 몰렸다고 느끼는 분들이라면 더욱 더 이 글을 잘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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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89년 부산 영도의 작은 동네에서 1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한국전쟁에 참전하셨던 할아버지는 고향인 완도로 돌아와 동네의 온갖 굳은 일을 하시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러다가 전쟁에 참여하셨던 공으로 한 작은 학교에서 목수로 일을 하시게 되었다. 전후의 처참했던 상황에서 그것은 나름 안정적인 직장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부러워하고 질투했고, 이 일자리를 두고 사람들과 수시로 많은 갈등이 생겼다. 그러다 큰 몸싸움이 벌어졌고, 할아버지는 그 와중에 크게 다쳐서 마침내 돌아가셨다. 그때 겨우 11살이었던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을 무기력하게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억울하게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할머니와 고향 완도를 떠나 먼 부산까지 와야만 했다. 아버지는 작은 단칸 셋방에서 살아야만 했고,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자마자 먹고 살기 위해서 전화선을 설치하는 일을 했다, 돈 한 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오로지 가족들을 위해 일을 하셨다. 버스비가 아까워 먼 거리도 걸어 다니셨고,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지도 못했다. 하루 종일 하수구 같은 좁아터진 곳에서 몸을 숙여 전선을 설치하다 허리 디스크가 생겨서 그렇게 미루다가도 결국 두 차례나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이런 우리 가족에게 가난과 결핍은 너무나 당연했다. 아버지는 늘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열심히 일하셨지만 반면에 자주 불같이 화를 내셨다. 나는 아침마다 아버지의 화내는 소리에 잠을 깼고, 그 분노의 불똥이 나에게 튈까봐 조마조마해 하며 자는 척했다. 아침을 먹을 때도 집에 돌아오시는 퇴근시간에도 잠을 주무실 때도 난 항상 아버지가 화를 내실까 불안에 떨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모든 것을 빨리 해야만 했고 내가 꾸물거려서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공포에 떨며 몸이 완전히 경직된 채로 있어야만 했다. 그렇게 공포와 불안은 내 마음속에 자꾸 커져만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아버지의 억울한 죽음과 그에 따른 온갖 고생으로 생긴 트라우마가 아버지의 마음속에 쌓이고, 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그 상처를 가족들에게 폭발시켰던 것 같다. 아버지는 사랑받지 못하고 컸으니, 당연히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또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함을 느끼면서 낯선 환경에서 가족을 지켜야만 했다. 간신히 생계를 잇기도 힘든 적은 월급으로 여섯 식구를 책임져야 했고, 작은 일에도 크게 불안해했다. 아버지의 그런 스트레스와 부정적 감정은 자연스레 엄마와 우리들에게 터졌다. 특히 가장 어린 나에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나를 끔찍이도 아꼈고 나는 누나들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의 상반된 두 모습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갑자기 벌컥 벌컥 화를 내는 것이 죽도록 무서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 아버지의 사랑을 잃고 버려질지도 몰라서 늘 두려웠다. 날마다 터지는 아버지의 분노와 고함 소리에 엄마는 늘 전전긍긍하며 불안해하고 나는 또 그런 엄마 뒤에 두려워서 숨곤 했다. 엄마의 두려워서 벌벌 떠는 모습이 곧 내 모습이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남자새끼가 무슨 인형을 가지고 노냐“면서 아버지가 칼로 나의 애착인형을 찢어버렸는데, 그때 유일하게 기댈 곳이 사라진 듯한 큰 충격을 받았고 한 동안 기도가 콱 막히는 느낌이 들어서 말도 제대로 못했다.
나는 커가면서 두 분의 모습을 꼭 닮아갔다. 내 마음의 반쪽은 분노였고, 다른 반쪽은 두려움이었다. 늘 끓어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랐고, 누군가와 대화할 땐 분노와 두려움이 내 마음속에 뒤죽박죽 섞여 요동쳤다. 항상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려고 집착했고, 그것이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면 버려졌다는 두려움에 위축되고 무서워했다. 학교와 학원에서 돌아오면 나는 텅빈 집에서 외로이 저녁 늦게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늘 외로웠다.
이런 심리 상태와는 반대로 나의 육체적 성장 상태는 아주 좋았다. 운동을 잘하는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 어렸을 때부터 나는 어떤 운동이든 자신감이 있었다. 항상 운동회 이어달리기에선 맨 마지막 주자로 달리며 다른 반 친구들을 따라잡았다. 또한 축구, 농구, 야구, 태권도 등 어떤 종목이든 한 번 하면 선수반 아이들을 훨씬 뛰어 넘을 정도로 습득력도 좋았다. 하지만 늘 마음이 문제였다. 나는 조금만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심하게 긴장하며 두려워했고, 몸은 움츠러들고 경직되곤 했다.